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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박점규의 노동여지도]노동인권과 ‘행복버스’가 달리는 청주

 

우진교통은 청주 시내버스의 소금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의 월급이 노동자와 똑같고, 조합원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15명의 자주관리위원회가 경영을 책임지는, 경영자치와 노동자치가 이루어지는 소중한 실험이 성공하고 있었다.

북적대는 시내를 내달린 택시가 금세 공단 입구에 다다른다. 작은 도시 한가운데에 청주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직장을 못 구해서 많이 놀아요.” 택시생활 20년을 훌쩍 넘긴 늙은 노동자의 걱정이 한가득이다.

정식품 청주공장. 빛바랜 굴뚝에 ‘베지밀’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42년의 역사, 16년 연속 두유 부문 브랜드파워 1위인 회사다. 정규직 570명, 비정규직 40명이 일한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 김영삼 정권의 정리해고제 날치기 통과에 맞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벌이며 거리로 나왔다. 고요하던 청주도 정식품을 시작으로 LG화학·네슬레가 투쟁을 함께했고, 1997년 잇따라 민주노총에 가입해 청주공단 민주노조 3인방이 됐다.

정식품 청주공장 | 박점규

 

최근 정식품 노동자들의 주머니가 두툼해졌다. 지난해 노사 합의로 상여금 700% 중 명절을 제외한 600%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켰다. 월급이 14% 정도 올랐다. 정년도 58세로 1년 늘어났다. 6월 2일부터 20일 동안 공장을 멈추고 전면파업을 벌인 결과다. 정식품의 합의는 공단 내 다른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영섭 노조위원장, 정인길 사무국장과 함께 공장 라인으로 향한다. “밥 안 먹고 어디가?”, “잠바 입고 다녀. 감기 걸려.” 교대로 식사하러 가는 노동자들의 인사가 정겹다. 이 위원장이 젊은 조합원과 살갑게 인사한다. 스물여섯, 회사의 막내다. 정년퇴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최근 3년 사이 48명이 새로 들어와 늙어가던 공장에 활기가 넘친다.

신입사원은 철학, 노조 역사와 운영 등 10강을 3개월 동안 ‘빡세게’ 공부한다. 입사 3년 동안은 의무적으로 선봉대원을 해야 한다. 부서별로 뽑힌 40~50명의 선봉대원들이 노조의 든든한 기둥이 된다. 노조 상집 간부 7명 중 6명이 입사 3년차 젊은 노동자들이다.

견학 코스를 따라 공장 안을 둘러본다. 오른쪽 라인에서는 병 베지밀이, 왼쪽에서는 팩 베지밀이 만들어진다. 대형 로봇 사이로 노동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회사는 운송기사와 식당을 외주화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싶었지만 조합원의 힘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지켜냈다.

대학노조 청주대지부 노조사무실. | 박점규


조합원의 힘으로 지켜낸 안정된 일자리
“2001년부터 7년 동안 해마다 파업을 했는데 그 기간을 거치면서 자신이 반대해도 노동조합이 결정하면 파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이 조합원 가슴속에 깊이 들어가 있어요.” 이영섭 위원장은 비근무조들에게 청주시내 집회에 참가하라고 문자를 보내면 95%가 참여한다고 자랑한다. 튼튼한 노조의 비결은 공부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청주공단을 한 바퀴 돈다. 깃발이 커피 회사 네슬레 담장을 병풍처럼 둘러쳤다. ‘롯데방식 노조파괴 박살’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인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아 노조가 천막을 치고 싸우고 있다. 재벌이 네슬레를 인수하면서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엘지생활건강, 하우시스, 엘지화학을 차례로 지난다. 청주에서 가장 큰 회사다. 친척 회사인 엘에스산전까지 엘지 도시 청주에서는 엘지 작업복을 입고 오면 외상술도 먹는단다. 하이닉스와 매그나칩 반도체 공장을 지난다. 오후반 노동자들을 태울 통근버스가 공장을 빠져나온다. 10년 전 풍경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2004년 10월 22일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 온갖 멸시를 당하면서 정규직 월급의 40%밖에 받지 못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240명이 일어섰다. 12월 15일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원청은 하청업체를 폐업했다. 대규모 집회, 가두투쟁, 충북도청 옥상과 죽전동 송전탑 고공농성, 서울사무소 사장실 점거농성…. 2년 6개월의 처절한 싸움. 그러나 2007년 4월 26일 금속노조는 조합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위로금으로 합의했다. 싸움은 졌고,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8년이 지났지만 공단의 하청노동자들은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공단을 나와 청주를 남북으로 가르는 무심천(無心川)을 건넌다. 개학을 앞두고 활기차야 할 청주대학교 교정이 삭막하다. 건물마다 김윤배 총장 퇴진 구호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청주대 재단인 청석학원이 학생들 등록금으로 충당한 재단전입금이 3000억원이다. 학생 1인당 교육비, 교수 확보율, 직원 1인당 학생수가 전국 꼴찌 수준이다. 한수 이남 최고의 사학을 꿈꾸던 청주대는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전락했다. 지난달 김윤배 총장은 물러났지만, 청주대 구성원들은 그가 재단 이사로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학노조 청주대지부 노조사무실. 장우식 사무국장의 수염이 덥수룩하다. 일반 기업체를 다니다 2006년 9월 청주대에 입사했다. 대학은 200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 연봉제를 도입해 성과급을 차등 지급했다. 부서와 업무가 달라 비교가 불가능한데 성과급이 6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차이가 났다. 기준이 있다면 김윤배 전 총장과의 거리다. 두산그룹이 인수해 연봉제와 학과 통폐합을 했던 중앙대를 모델로 컨설팅을 받았다고 했다.

청주대 직원 146명 중 조합원은 90명. 돌아가며 노조사무실과 천막에서 철야농성을 한다. 최근 신임 총장을 만나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 “많은 대학이 비리와 전횡을 저지르는 이유가 사립학교법을 위반해도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이에요. 공공재인 학교조차 돈이 우선시되고 돈의 관점에서 학과를 없애는데 대학 총장과 이사회가 교육적인 마인드가 없기 때문이죠.” 무심천이 내려다보이는 청주대 교정이 사심(私心) 가득한 이들에 의해 얼룩지고 있다.

우진교통 버스가 차고지로 들어온다. 광고 자리에 그림 한 폭이 그려져 있다. 판화가 이철수 화백의 작품이다. 버스 안에도 판화가 전시되어 있다. ‘버스와 함께 하는 예술여행’이란 이름으로 충북민예총과 우진교통이 버스 공간을 활용해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공익사업이다.

건물 입구에 ‘노동자의 희망을 실천한다’는 구호가 적혀 있다. 버스 113대, 300명 모두가 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 자주관리회사’. 10년 전인 2005년 1월 20일 부도난 버스회사를 노동자들이 인수했다.

청주노동인권센터 | 박점규


사심으로 얼룩진 청주대학교 교정
사무실이 정신없다. 회사는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검토하기 위해 방문한 청주시 관계자를 만나느라 바쁘고, 노조는 회계감사를 받느라 분주하다. 우진교통 김재수 대표. 13년 전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처장이던 그와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나던 장면이 떠올랐다. 경찰의 도청을 피하기 위해 종이에 지도를 그리며 ‘가투’를 준비했었다. 머리숱이 줄고 주름은 늘었지만 환한 웃음은 그대로다. 그가 우려낸 녹차를 따르며 지난 10년의 세월을 쏟아낸다.

부도난 회사를 노조가 인수하고 민주노총에서 파견됐을 때 신뢰하던 변호사의 컨설팅 결과 회사 망한다고 손을 떼라고 했던 일, 차고지 문제로 LH공사와 한 달 보름 동안 싸우던 일, 2008년 노동자 자주관리에 대한 인식 차이로 61명이 집단 퇴사한 일, 약속대로 5년 뒤 민주노총으로 돌아가겠다던 그를 조합원들이 천막농성을 하며 막아서던 일….

우진교통 300명의 땀과 눈물과 지혜가 모아진 10년, 150억원대의 악성부채를 청산했고, 자산은 비약적으로 늘어 제2 차고지 땅을 매입했다. 지난해에는 1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평균임금이 높고, 고용이 안정화돼 청주에서 제일 좋은 버스회사이자 가장 조직력이 튼튼한 노동조합이 됐다.

술, 노름, 폭언으로 대표되는 소위 ‘운짱 문화’를 노동자 문화로 바꾸는 일은 끊임없는 교육과 토론이었다. 6개월 동안 자본주의, 노동자 철학, 노동운동사 등 특별교육을 했고, 현장 자치모임을 만들어 운전 중 벌어지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했다. 체육대회만 하면 술 먹고 싸우고, 초상집 가서 노름하던 문화가 지역 노동자와 연대하고, 동호회와 가족들이 모여 여행을 떠나고, 광주항쟁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진교통은 청주 시내버스의 소금 역할을 하고 있다. 월급날이 휴일이면 다음날 주던 관행이 우진 때문에 사라졌다. 노사 담합으로 시에서 지원금을 받아 비정규직을 채용하려던 못된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촉탁직을 쓰려던 꼼수도, 환승요금을 없애려던 계획도 막아냈다.

대표의 월급이 노동자와 똑같고, 조합원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15명의 자주관리위원회가 경영을 책임지는, 경영자치와 노동자치가 이루어지는 소중한 실험이 성공하고 있었다.

김재수 대표가 떠나도 노동의 가치가 실현되는 우진교통이 유지될 수 있을까? 사심이 많은 대표가 들어와 10년의 노력이 허물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김 대표가 최근 현장 자치모임에서 시민들에게 들어온 불친절 민원을 숨기려고 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평가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고 해외여행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조합원들이 집단 지혜로 복원력과 정화능력이 생긴 겁니다. 스스로 회사를 건강하게 하고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 더 좋은 대표를 세워낼 거라고 확신합니다.” 우진교통 노사는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임기가 정해진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부도난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노조
우진교통노조 박강여 사무국장과 무심천변을 달린다. 그가 김재수 대표를 처음 만난 건 트레일러 운전사로 화물연대에 가입해 노조를 처음 접할 때였다. “김 대표가 10년 전과 달라진 건 얼굴이 좀 하얗게 된 것뿐인데요.” 사심 없이 흐르는 무심천을 닮은 사람들이다.

청주노동인권센터에 들어선다. 사무실 분위기가 밝고 활기차다. 회의를 하는데 조광복 노무사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2010년 만들어져 해고, 산업재해, 임금체불에 대한 무료상담을 하는 곳이다. 월 1만원 이상 회비를 내는 회원이 600명이 넘는다. 전국의 비정규 센터들이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데 이곳은 순수 회원제로 운영된다. LG화학, 정식품, 우진교통 등 민주노총 회원들도 많다.

“오늘 옥천군 보건소 방문간호사 집단해고 사건으로 기자회견을 했는데 지역사회에 알리는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오랫동안 회사생활을 하다 늦깎이로 사회운동에 뛰어든 주형민 노무사의 얼굴이 해맑다. 지난달에는 매그나칩 반도체에 근무하다 2006년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노동자의 가족과 함께 싸워 합의를 끌어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민주노총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지만 동네 노동인권센터는 진입장벽이 낮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년쯤 됐을까, 어떤 아저씨가 오셨어요. 임금을 못 받았다고 해서 알려드렸더니 다시 오셨어요. 가진 게 별로 없다며 짜장면 사먹으라고 만원을 건네셨어요.” 4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김현이 사무처장은 작은 도움에도 고마워하는 모습이 짠하고 뭉클했다고 말한다. 제조업과 이주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는 음성에도 지난주 노동인권센터가 문을 열었다. 조광복 노무사가 청주에서 출퇴근하며 상담을 하고 있다. 청주를 휘감은 무심천이 음성의 노동자에게 흐른다.

우진교통 노동자들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마을카페에서 늦은 저녁밥에 막걸리를 기울인다. 쌍용과 스타케미칼 굴뚝농성을 응원하기 위해 현직 기자들이 모여 만든 <굴뚝신문> 창간호가 걸려 있다. 서울에서 1000부를 받아 충북에서 1부당 1000원씩에 팔았다.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기획단을 시작으로 미디어 제작활동과 지역꼬뮌학교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 노동현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며 지난 12월 제5회 호죽노동인권상을 받았다. “추워서 카페에 나오기 싫을쯤 상을 받아서 연탄난로를 놨어요.” 2011년 청주에 내려온 김설해 활동가는 최근 우진교통 10년을 영상에 담아 상영했다. 공룡은 ‘공부해서 용되자’는 뜻이다. 공부해서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쉬운 밤이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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